무명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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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생애

제주4·3사건으로 1948년 11월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잔인한 토벌이 자행되었다.
제주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국가폭력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죽임당했다.

진아영 할머니(1914~2004)도 1949년 1월,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 고향집 울담 밑에서 토벌을 나온 경찰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졌다.
할머니는 치료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그 아픔을 견디어야 했다. 할머니는 이 때부터 턱에 하얀 무명천을 두르고 다녔다.

그 후 할머니는 이름 대신 ‘무명천 할머니’로 불리웠다. 그래서 할머니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보다 역사가 새겨 넣은 이름으로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다.

턱 총상으로 할머니는 말도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해 위장병을 달고 살았다. 돌 볼 사람이 없어서 고향을 등지고 사촌과 언니가 살고 있던 지금의 한림읍 월령리로 이주했다.

생전 할머니는 약값을 벌기 위해 보말을 잡고 톳과 파래를 채취해 1시간 걸리는 오일장에 내다 팔았다. 할머니는 말년에 2년 5개월 간 성이시돌 요양원에서 계시다가, 2004년 9월 8일 91세에 한 많은 삶을 마쳤다. 할머니의 삶과 삶터는 4·3역사에서 매우 다층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주4·3사건의 과정에서 여성들은 두배 세배의 고초를 겪었다. 할머니는 집 안 울담에서 총상을 입은 무고한 양민이자 제주여성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55년간 후유장애를 달고 살아야 했던 생존 희생자였다.

할머니는 자손이 없다.
후손이 없거나 끊긴 4‧3희생자 추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뒤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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